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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모든 순간을 소중히 ::

내 주변 사람들에게 연극을 본다고 하면, 다들 반응이 왜 그런지 모르겠다.
뭐지 이놈 -_- 이라는 반응도 있고, 부르주아라고 비꼬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다들 각자의 논리가 있어서, 하나하나 맞춰서 반론해주기도 귀찮다.
(같이 보러 가자고 말도 안 꺼냈는데 왜 정색인지 모르겠다 [.....] 애초에 그러지도 않을 거지만)
물론 나도 연극 애호가가 아니며 자주 보지도 않는다. 최근에 연극을 본 건 딱 세 편.
08년 겨울에 예술에 전당에서 올려진 『갈매기』와 09년 5월에 같은 장소에서 올려진 『템페스트』
그리고 이번 8월에 본 『갈매기』가 전부다. (아마 이 세 편이 내 짧은 인생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연극이다 [...])
갈매기를 두 번이나 본 것은 그만큼 처음 접한 연극에서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작은 경험으로 미루어 보면, 연극이라는 것 자체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애초에 원작을 알아야 하고(물론 몰라도 보겠지만 재미가 다르다), 극 자체만 가지고 극을 모두 이해했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올려진 곳이 어디든지 연기자와 연출자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 (극히 짧은 견해다 [...])

갈매기를 짧은 기간 동안 두 번이나 본 것은 극 자체가 굉장히 많은 것을 담고 있기 때문에(연출이나 번역, 해석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같은 내용일지라도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갈매기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서로 다른 생각, 서로 다른 해석, 서로 다른 이야기를 두서 없이 계속 던지기만 한다. 그냥 각자의 사정과 생각들을 마구잡이로 던져놓기만 한다. 그리고 결말에 가서도 그리 시원하게 해답을 주지도 않는다. 잠깐 인물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사실 주인공이라는 단어도 적합하지 않다.) 뜨레블레프는 작가 지망생이며 다른 속물 작가와는 다른 길을 걷고자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고 한다. 그래서 이제 이류 무대에서 서는 배우, 어머니 아르까지나와 그녀의 애인이자 자신의 경멸하는 기존의 작가 뜨린고린과 마찰한다. (그러나 극중에서 그의 분노는 방향성을 상실한다.)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니나는 쉽게 더럽혀지는 순수함을 지니고 있어 뜨린고린의 말발에 넘어가 쉽게 사랑에 빠진다. 그렇지만 금새 그에게 버려지고(작가 뜨린고린은 다시 어머니 아르까지나에게 돌아간다), 뜨레블레프에게 마지막 절망감을 안겨주는 인물로 등장한다.

어머니 아르까지나는 아들의 반항을 가소롭게 여기지만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고 뜨린고린과 연인 관계를 유지한다. 그녀는 아들을 자신과 애인을 증오하는 찌질이라고 생각하지만 깊은 곳에서는 아들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 인물로 등장한다.

극중에서 끊임없이 "작가가 되고 싶었어."라고 이야기하는 삼촌 소린은 작가 지망생인 조카의 좋은 조력자이다. 또 조카에게 큰 기대를 거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하녀인 뽈리나는 집안의 일을 도맡고 있는 집사 사므라예프와 결혼했지만, 한때 잘나가던 훈남 의사 도른을 아직도 잊지 못해 자신을 데려가달라고 애원한다.

하녀 뽈리나의 딸 미샤는 뜨레블레프를 좋아하지만 니나를 바라보고 있는 뜨레블레프에게 외면받는다. 그리고 어머니의 전처를 밟아 사랑하지 않지만 학교 교사 메드베젠코와 결혼한다.

인물들은 서로 소통하지 않고 서로의 감정과 상황에 충실하게 행동한다. 그러나 이야기의 자체의 흐름은 간단한다. 작가 지망생인 트레블레프는 어머니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자신이 직접 쓴 연극을 보여주지만 너무 난해하고 뭔지 모르겠다는 평과 함께 모두 앞에서 망신을 당한다. 그 연극의 주연을 맡은 니나는 어머니의 애인과 눈이 맞고, 그것을 눈치 챈 트레블레프는 호수의 갈매기를 쏘아 그녀에게 던진다. 트레블레프와 크게 다툰 어머니는 애인과 함께 모스크바로 서둘러 돌아가지만 니나도 배우의 꿈과 사랑을 따라 몰래 모스크바로 따라간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니나는 낙태를 하고 결국 삼류배우로 전락하여 돌아오고, 작가로서 성공하지만 다시 한 번 큰 절망감에 빠진 트레블레프는 자살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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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나는 같은 연극을 두 번을 보았지만  다른 두 연극을 본듯 하다. 물론 이야기의 느낌이나 주는 감동마저 전부 다른 것이었다. 러시아 연출가인 유리 부투소프는 이 원작 자체를 완전 분해한 느낌을 가져왔다. 연극 무대 자체도 높아서 압도 된 분위기, 어딘가 괴기스럽고 슬픈 분위기를 주었고, 노래나 율동을 통해 중간 중간 지루한 부분도 색달랐다. 또 감정의 격정을 절제하지 않고 훌륭하게 파헤쳤을 뿐만 아니라 보는 이에게 에너지를 느끼게 했다.(배우의 연기도 좋았다) 특히 어머니와의 갈등하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쉽게 잊혀지질 않는다. 어머니를 때리고, 키스하고, 서로 추궁하고 격정적으로 대립하는 모습은 아마 트레블레프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과 증오하는 마음의 갈등을 충분히 표현해주었고, 객관적으로 몰락한 배우가 된 니나와의 마지막 만남은 눈물로 번진 화장으로 애써 웃으며 트레블레프를 맞이하는 장면으로 희화화 되었다.  니나는 아직도 사랑하고 있다는 말로 애원하는 트레블레프에게 자신은 배우의 꿈을 아직도 가지고 있고, 그것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한다. 인생에서 겪은 깊은 화인을 간직한 채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이 모습은 마지막에 자신의 문제점을 깨닫지만 결국 자살하는 트레블레프의 모습과 훌륭하게 상반된다) 또 모든 소도구가 치워진 텅빈 공간에서 자살하는 트레블레프를 껴안고 오열하는 아르까지나의 모습에서 결국 아들과의 갈등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마는 안타까움을 보여준다. 아무도 모르게 죽은 원작의 경우와는 완전히 다른 결말이다.(보통 이 결말은 연출자마다 다르다고 한다.) 이 결말로 미루어보아 유리 부투소프는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성과 니나라는 캐릭터에게 무게를 두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이 이야기에서 관객을 외면시키지 않고 이야기의 무게를 적당한 곳으로 풀었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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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소극장에서 열린 박근형씨의 갈매기는 어머니와의 갈등에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감과 절망감을 극대화 시킨다. 물론 위의 그것도 마찬가지만 어머니를 괴롭히거나 키스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해하는 모습으로 표출되었다.(분노의 방향성이 자기 자신에게 더 집중된 모습이었다.) 그러나 어머니 역시 애인의 사랑 없이 살 수 없는, 사랑받고 싶어하는 불완전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인물들의 상황 묘사나 감정표현도 절제되거나 억제된 분노와 슬픔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절규와 애원이었다. 니나 역시 달랐다. 슬프지만 당당한 모습이 아니라 작고, 외소한 느낌이 들도록 표현되었다. 그녀는 사랑 앞에서 작아지고, 그(트레블레프의 애인이자 자신의 옛애인을)를 아직도 사랑하고 있으나 사랑받을 수 없는 사실에 더 처절하게 비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자신의 꿈이었던 배우 역시 꿈이 아니라 돈을 위해서 밥을 먹기 위한 수단으로서 변모한다. 그리고 두 연극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삼촌 소린과 뜨레블레프를 사랑하는 마샤에게도 관계성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삼촌은 트레블레프가 죽기 전 "작가가 되고 싶었어."라는 말을 반복하며 조용히 임종을 맞는다. 그리고 트레블레프의 마지막 모습은 마샤가 목격하면서 또다른 갈등(사랑)이 우울하게 사라지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아르까지나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아들의 의지와 "사랑 받고 싶다"는 아들의 마음의 죽음 사이에서 오열하지도 못한다. 이 연극에서 관계성 회복이나 관객의 바라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부조리하고 우울한 극의 분위기를 제시한다. 그리고 그 감정과 상황이 극대화 되어 아르까지나를 부곽시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니까 총평을 한 마디로 하자면 훌륭한 갈매기였다. 특히 서이숙씨는 내가 먼곳에서 굳이 찾아온 보람을 주었다. 솔직히 예매 안 하고 가도 충분히 볼 수 있다는 아니한 생각을 했는데, 사람이 많아서 하마터면 못 들어갈 뻔 했다. 배우들이 좋다는 말을 그냥 흘려 들어서 경을 칠뻔 했다. 공연 전에 대기하다가 옆에 있던 분이 끊임없이 연극이나 배우에 대해서 이야기해서 조금 짜증도 났다. '제길 알면 얼만큼 안다구!'라는 생각이 들긴 했는데, 부럽긴 부러웠다. 뭔가 자신있게 안다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니까. 거기다가 옆에 함께 이야기할 사람이 있으니 정말 부럽긴 했다 [....]

마지막으로 내 근간을 이루는 모든 것을 도와주고 이 연극도 추천해준 나의 조력자에게 감사를...
그리고 다음에는 혼자가 아니라 조력자와 다시 함께 좋은 갈매기를 봤으면 좋겠다.

*사실 조연으로 등장하는 미중년 의사 '도른'이 이 연극의 굉장한 까메오다. 스토리상에 큰 비중은 없지만 위트와 재치 넘치는 말로 집중을 잃지 않게 도와준다. 게다가 중년 배우가 맡다보니 포쓰도 상당. 이 갈매기와의 인연은 카페에서 우연히 '도른'역을 맡은 남명렬씨에게 싸인을 받은 것 때문에 더욱 기억에 남는 듯하다.

*서이숙씨의 연기는 이미 『템페스트』에서 경험했으나 공연장에 들어갈 때까지 몰랐다. 목소리를 듣고 알아봤을 때, 묘하게 흥분이 되어서 더 재미있게 본 것 같다.
2009/08/20 18:09 2009/08/20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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