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main image
룬룬's Blog is powered by Textcube / Designed by Qwer999 from DesignMyself.net

지나가는 모든 순간을 소중히 ::

1 2 3 

우리 말 바로 쓰기

2009/04/09 21:31 by 애나무

생활에서 쓰이는

2009/04/09 21:31 2009/04/09 21:31

<다시 찾은 곰다방>

일상과 책 2009/02/16 02:06 by 애나무

-꽃 향기가 나는 이가체프

  미국의 커피 사이트 <스위트 마리아 Sweet Maria>에서 이가체프는 꽃향기가 나는 커피라고 설명되어 있다. 곧잘 마셔왔던 이가체프에서 내가 꽃향기를 맡아본 적이 있었던가. -10마일 밖까지 향기가 난다는 이가체프, 향이 그정도로 좋다고- 찾아가서 대뜸 "뭘 먹을까요?"라고 던지니 웃으시면서 르완다 커피와 이가체프를 권하신다. 사이폰으로 마시고 싶다고 토를 다니까, 이가체프를 사이폰으로 주신단다. 원래는 드립으로만 판매하는 곳인데,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헌데 르완다 커피라니, 르완다에서도 커피를 생산하던가? 라는 의문이 생겼다. 궁금해서 캐물으니까, 요즘 뜨고 있는 커피라고 다시 말씀해주신다. 자꾸 엉뚱한 질문으로 귀찮게해서 죄송스럽기까지 했다.

  과연, 르완다 커피. 인상이 아주 좋았다. 신맛이 좋다고 칭찬하니, 르완다 대통령을 미국에서 초청한 일이 있다고 귀뜸해주신다. 사이폰으로 내려온 이가체프의 맛은 특히 좋았다. 은은한 꽃향기 처럼 들어오는 신맛이란. 문자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신맛을 직접 느낄 수 있다니. 비로소 줄창 마셔볼 요량으로 자리를 잡았다.

  사실 커피의 맛은 천차만별이고 분류할 수 없을정도로 많지만, 커피 과육에서 나는 신맛을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물론 이 말이 반드시 옳다는 건 아니다- 적어도 내가 보아온 사람들은 신맛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내는데, 이렇게 멋진 신맛을 가지고 카페의 유지가 가능한지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싫어하는 분들은 다시 안 오시죠."

하면서 웃으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홍대 놀이터 골목에 있는 이곳을 굳이 찾은 이유는 인터넷에서 본 이 사진 때문. 소위 통돌이 로스터(다람쥐)주인공이다. 이 로스터는 아주 적은 양의 콩만 볶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큰 로스터처럼 대량 생산이 불가능하다는 말씀. (내가 처음으로 접한 커피도 이 로스터에서 나왔기 때문에, 기대가 더 되었다.) 국내에서도 구할 수 없는 귀한 몸이다. 적은 양만 생산하기에 콩을 자주 볶아야해서 피곤하시다는 사장님이 더 호감이 갔다. 또 앉아있더니, 융드립도 해주시고, 찬물로 우린 커피도 주신다. 곤란하게 커피값도 더 안 받으셔서 부담이 많이 되었다.

  오늘도 홍대 주변에 있는 다른 카페를 가볼까 하다가, 다시 발걸음을 곰다방으로 옮긴다.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말을 나누다가, 나를 기억해주시는 사장님이 고마웠다. 오늘은 진짜 사장님을 뵙기도 했는데, 왜 곰다방인지 알 수 있었다.(무례일까 ^^) 계산을 하고 돌아가는데 쿠폰을 주셨다. 15번 찍으면 커피가 아니라 책이나 음악 CD를 주신단다. 연인과 함께 친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 눈에 많이 띈다. 아무래도 여러 명이 모임을 가지는 곳이 아니라 혼자서 조용히 책을 보거나 두명이서 적은 수가 조용히 이야기하는 분위기의 카페.

(사장님과 손님 두 분이 책을 보고 계시길래, 몰래 책제목을 훔쳐갔다. 적어도 나에게는 유쾌한 장소.)

*일러두기

1. 이곳은 흡연자에게 유리한 공간이다. 기본적으로 성냥과 재떨이도 제공해주신다.

2. 이곳은 전통적인 커피를 판다. 우유나 첨가물을 넣는 커피를 팔지 않는다. 대신 커피를 못 드시는 분들을 위해 유자차를 판매한다. 또 블랜딩한 커피를 팔지 않는다. 가격은 모든 종이 5천원...
 

3. http://gomdabang.net/

4. <커피 수첩>, 김정열, 대원사.

위치정보

홍대 입구 5번 출구에서 홍익대학교 방면으로 올라가면 학교 건물이 보이는 곳에 건널목이 있다. (건널목에 패밀리 마트) 건너자마자 있는 롯데리아와 카페 사이에 있는 골목길에 들어가면, 비탈길에 곰다방이 위치하고 있다.
다른 방법으로는 홍대 놀이터 앞에 있는 아트박스(북카페) 골목 사이 비탈길에서 곰다방을 찾을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9/02/16 02:06 2009/02/16 02:06

(영양성분) Taster's Choice

분류없음 2009/02/15 12:06 by 애나무
원두를 내려먹기 시작하고부터는 인스턴트 커피는 크림의 텁텁함 때문인지 입에 오래 붙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원두를 내려먹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닐 때는 대신 홍차를 우리거나 하는데요. 의외로 크림없이 나온 제품들이 입에 잘 맞아서 한 통 사놓고 먹어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인스턴트 제품을을 먹다보면 신경쓰이는 것은 열량입니다. 하루 한잔정도면 다행이지만, 여러 잔을 먹었을 때 그 설탕과 크림이 모이면 만만치 않거든요. 한번 알아봅시다.

Taster's Choice 부드러운 블랙
  • 열량 : 11.6kcal
  • 탄수화물 : 2.9g
  • 당류 : 2.1g
  • 단백질 : 0g
  • 지방 : 0g
  • 콜레스테롤 : 0mg
  • 나트륨 : 0mg

2009/02/15 12:06 2009/02/15 12:06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죽은 아들을 잊지 못하는 아버지(호아킨 피닉스)와 유랑 가족의 틀을 벗어나 자신의 꿈을 개척하고 싶은 아들(리버 피닉스)이 마치 한 이야기의 부자 같다. 호아킨 피닉스가 수염을 길러서 그런 걸까.

이제 리버 피닉스는 젊은 나이에 죽어 더이상 스크린에 나타나지 않고, 호아킨 피닉스는 영화계를 떠나 더이상 스크린에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레저베이션 로드>, <허공에의 질주>


2009/02/10 18:54 2009/02/10 18:54

<다우트>, 상처뿐인 영광

영화 2009/02/10 18:06 by 애나무

"만약 믿음에 근거가 있다면, 우리는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A: 어째서 아무런 소득이 없는 일에 참견하죠? 당신에게 피해가 오는 일은 없잖아. 오히려 이것을 들춰내는 것이 더 큰 피해가 될꺼에요.

B: 아무런 소득이 없다니요.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로 잡아야 합니다. 돌이킬 수는 없지만 방치하는 것은 맞지 않아요. 그것이 내가 삶을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A: 그렇지만 당사자나 당사자의 보호자도 원하지 않는 일이에요. 당신도 내부 고발자로 고역을 면치 못할 일입니다. 서로 좋을 게 없단 말이에요. 우리 그냥 덮어 둡시다. 게다가 당신은 나를 비난할 어떠한 근거도 없잖아요? 합리적인 근거를 기반한 문제 제기가 아니라는 말이에요.

B: 그래요. 내가 당신을 비난할 어떤 명확한 근거는 없어요. 하지만 그날 당신은 분명히 잘못을 했다는 정황적 근거가 있어요. 당사자는 없지만 증인이 있어요. 우리 내기해볼까요? 나는 당신이 잘못을 했다는 것에 교장으로서의 사회적 지위와 내 가치관과 신앙과 사후세계까지 걸겠어요. 지옥에라도 가겠다는 말이에요.

...

차라리 백리걸음 힘들더라도 굽은 나무 아래선 쉴 수 없고

비록 사흘을 굶을지언정 기우숙한 쑥은 먹을 수 없네

*『미쳐야 미친다』, 정민, 이덕무의 시.

2009/02/10 18:06 2009/02/10 18:06

레저베이션 로드 reservation road

영화 2009/02/04 02:43 by 애나무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앉아서 '가상의 유서'를 작성해본다. 내가 과연 죽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누군가 슬퍼하겠지라는 생각이 조금하다가 스스로 몸서리친다.

내가 일상적으로 전화하는 부모님, 친구들, 선생님 그리고 이 사랑하는 것들이 사라진다면,

그것은 얼마나 잔인하고 불행한 일일까. 그래서인지 '가상의 유서'를 쓰는 일은 더디기만 하다.

남겨둘 것은 있는가. 돌아보면 책장에는 잡서들이 가득하고, 원고지에 쓴 일기가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다. 내 부모님은 자기 혐오와 자기 부정으로 가득한 결과물들을 보면서

얼마나 슬퍼하고 답답해하실까. 나의 사람들은 나와 주고 받은 편지를 다시 펼쳐봐 줄까?

이 불행의 순간, 나는 다른 가정을 해본다. 입장을 바꿔서 누군가가 나의 곁을 떠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죽음은 항상 내 언저리에 있지만, 그것은 언제나 갑작스럽게 찾아오기 마련인데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래서 이 영화는 유보의 시간, 유보의 길인가? 영화를 보는 내내,

주인공의 울분과 아픔과 인생에 대한 절망감이 느껴진다. 무력한 공권력에 대한 혐오와

그보다 더 무력한 자기 자신은 도대체 어떻게 하면 용서할 수 있는 것인가. 나는 원수를 찾고 싶다.

그리고 원수에게 그에 걸맞는 죄값을 안겨줄테다. 그 죽음이 온당하기보다 공평하길 바란다.

막상 원수를 찾아서 총부리를 겨누고, 이제 방아쇠를 당겨야 하는데‥‥ 당겨야 하는데‥‥

결국 이자도 소심한데다 이기적이고 자기 혐오에 빠진 더러운 인간 아닌가. 지독한 인간.

그래 차라리 네가 이 자리에서 죽는 것보다, 앞으로 더 살아서 네 자식보다 훨씬 긴 인생을

기어코 살아서 생의 아픔, 슬픔, 괴로움, 쓴맛, 신맛 전부 맛 볼 수 있는 만큼 다 맛보고 늙어가길.

그게 가장 잔인한 복수가 될 테니까.


*마지막의 저주는 김광규 시인의 시집에서 인용했으나, 시집이 손에 없어 정확한 출처를 알 수 없다.
**위 사진의 출처 : http://blog.naver.com/martinyup

2009/02/04 02:43 2009/02/04 02:43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느 날 밤 나는 술을 마시고 귀가했는데 취중에 용기를 내어 이방인을 마루로 불러냈다. 나는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당신에게 아주 중요한 부탁이 하나 있소. 정말 나로서는 중요한 일이오. 내 부탁을 들어주시겠소?"

이방인은 내 거동으로 볼 때 틀림없이 돈을, 그것도 적지 않은 돈을 빌려 달라고 말할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는 아주 곤혹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부탁인데요? 말씀해보세요."

  "그 <마조셰>에 나는 깊이 빠지고 말았소. 하루라도 그걸 듣지 않는 날은 잠조차 오지 않는 거요. 그렇게 아름다운 노래는 처음이요. 그 노래를 내가 매일 들을 수는 없을까요?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어떤 대가라도 치르겠소."

일단 돈 얘기가 아닌 걸 알게 된 이방인이 안도감을 느끼고 내게 뜻밖에 선선하게 말했다.

  "가져요 그렇게 소원이라면 거저 주겠소."

  그 순간 나는 감격해서 말을 못했다.‥‥‥

『바흐를 좋아하세요?』, 송영, p.219~220


도대체 인생에 있어서 음악이란 무엇인가?

당신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돌아본 적이 있는가?

이 늙은 남자의 글에서는, 깊은 세월의 질감이 느껴진다.

삶에 대한, 음악에 대한 자기 성찰이 나이 먹어감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책이 너무 놀라워서, 나는 챕터를 넘어갈 때마다 음악하는 친구에게 쪼르르 전화를 해댔다.

이런 세상이 있었구나하고 말이지.

나의 책 친구이자 커피 가게 사모님께 한 권 사다 드렸더니,

오랫만에 제대로 된 책을 읽었다고 좋아하신다.

그래서인지 이 작은 에세이가 내 책장에 박혀 있는 모습이 참 보기가 좋다.

2009/02/03 05:04 2009/02/03 05:04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소식을 전한 사람은 이 메세지가 씌어진 뒤에 마드리드에 봉기가 일어났고, 파시스트 군대가 바르셀로나로 진격해오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나는 이 소식을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에게 읽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어요. "친구들이여, 우리가 언제 다시 보게 될지 모르겠군요. 서로에 대한 작별 인사로 우리 마지막 악장을 연주할까요?"

 그들이 소리쳤습니다. "그래요. 끝까지 연주합시다."

 전례 없이 최선을 다해 오케스트라는 연주하고 합창단은 노래불렀습니다‥‥‥.

 "그대의 부드러운 날개가 있는 곳에서 모든 인류는 굳게 맹세한 형제들이리라."

 눈물이 쏟아져 음표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마치 가족과도 같은 소중한 친구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나라가 다시 평화로워지는 날이 올 겁니다. 그날, 우리는 교향곡 제9번을 다시 연주하게 될 겁니다."

그들은 악기들을 케이스에 넣고 모두 홀을 떠나서 거리로 나갔습니다. 사람들은 바리케이드를 쌓고 있었습니다.

-『나의 기쁨과 슬픔』,p260

(바보처럼, 여기서 울컥 눈물이 났다.)


내 조카가 돌을 맞아, 밥을 얻어먹고 엉뚱하게 내가 용돈을 받았다. 이게 웬 떡이냐 싶어서, 버릇처럼 덜컥 책을 한 권 구입했다. (미안하다, 조카야. 너가 조금 자라면 또 그 때 내가 직업이 있다면 아무리 궁하더라도 용돈을 꼭 주마.)

참 읽으면 읽을수록 조금 민망하긴 했다. 자기애라고 할지, 잘난체라고 해야할지.

책도 번역체라서 그런지 늘어지는 통에 몇 일이나 붙잡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여러 악기를 지나쳤지만, 첼로에 반해 저것을 반드시 가지겠다는 눈빛을 가진 소년으로,

어머니의 고집으로, 또 음악에 대한 노력으로 성장하는 청년으로

가난과 배고픔에도 끝까지 첼로를 놓지 않는 노력파로

독일 장교에게 비굴해보이지 않으려는 당당한 노인으로

나를 부끄럽게 한다.


어째서 거장들은 하나같이 배고픔과 아픔과 전쟁과 죽음과 함께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

당신에게 찬사를 보낸다.


* "로르카를 생각하면 그라나다의 반대쪽 카탈로니아 출신의 파블로 카잘스가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1936년에 로르카는 죽었고, 1938년 말 카잘스는 같은 이유로 고국을 영원히 등지고 망명의 길을 떠났다. 꺾이지 않는 불굴의 예술가의 표상으로 카잘스는 로르카와 쌍벽을 이루었지만, 그는 90세가 넘도록 장수했고 생전에 온갖 영광과 찬사를 누렸다는 점에서 로르카와 아주 대조적인 삶을 살았다."


『나의 기쁨과 슬픔』은 송영의 <음악 에세이> 가져온다.

2009/02/03 04:35 2009/02/03 04:35

밥상머리에서 궁상떨기

일상과 책 2009/02/03 03:09 by 애나무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문득 따뜻한 밥을 한 숟가락 떠 먹다가, 내가 과연 오늘의 밥값을 했는지 생각해보았다.
차마 밥이 입에 들어가질 않는다.
 '숨 쉬는 일이 목을 조르는 것 같아' 라는 시구가 생각났다.(결국 틀린 시구였지만)
누구였을까 한참을 생각해보니, 이성복의 시 같았다.
'꿈은 서럽고 삶은 폭력적이다'라는 시구도 생각나고 말이지.
그런데 『호랑가시 나무』라는 시집에서 나온 대목인 것까지는 알겠는데,
시 전문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토록이나 보고 또 보고 외운 시였는데 말이지.
문학도는 아니지만, 기숙사 좁고 답답한 이층 침대에 앉아, 아침마다 시집을 본적이 있었는 걸,
좋은 시절이 다 가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 대체 어떻게 하자고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는지.

교보문고에 앉아서 로맹 가리의 전기 소설 『로맹가리』를 틈틈이 본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라는 책에 빠져들어 한동안 그것만 베낀 기억도 난다.

어떻게 하면 삶의 허무함과 아픔을 문자로 쓸어담을 수 있는지 궁금했는데,

어떻게 하면 홀어머니 밑에서 국적을 바꿔다니고,

어떻게 유태계 프랑스인으로 2차 세계 대전을 살아남았으며,

어떻게 가명으로 한 번 수상한 콩쿠르에 또 입상했으며,

왜 그는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는지,

약간의 실마리가 풀린다. 그는

감히 누군가 글을 알려주지 않았고,

감히 문학과 관련된 학과에도 진학하지 않았으며,

감히 혼자 쓰고, 지우고, 수정하는 일에 몰두했다고 한다.

인생의 가시밭길은 그에게 권총을 안겨줬지만 말이지.

피나는 노력과 나에 대해서, 그리고 나에 대해서

밥을 한숟가락 먹다가 떠올른 시구.


-헤헤, 다행이 시 하나는 적당히 외운 모양이다 기억나는 걸 보면,


치욕의 끝


이성복


치욕이여

모락모락 김나는

한 그릇 쌀밥이여,

꿈 꾸는 일이 목 조르는 일 같아

우리 떠난 후에 더욱 빛날 철길이여!

*이성복의 시집은 김훈의 <내가 읽은 책과 세상>의 "『남해 금산』을 백 번 읽었고 씀." 이라는
문구를 읽고 봄. 그러나 개정판에 『남해 금산』이 없어, 지인의 책으로 보았다.
**로맹 가리는 윤영수의 『소설 쓰는 밤』에서 얻어 와서 보았다.

2009/02/03 03:09 2009/02/03 03:09

디파이언스, 자문자답

영화 2009/01/18 21:36 by 애나무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커피숍에 앉아서 '나'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나'는 깔끔하게 머리 모양을 만들고, 말쑥한 정장 느낌의 옷을 입고 있다. 이 기다리는 '나'를 비판적이고 싶고, 논리적이고 싶은 '나'로 정의한다. 그래서 기다리는 '나'는 시간 약속을 중요시 한다. 그가 불만에 찬 표정으로 커피를 들이킬 때, 드디어 '내'가 당도한다. 사과도 하지 않고 불쑥 앉아서 물을 들이킨다. 사과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인지, 아니면 어색한 것인지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그래. 너가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안다. 이 어쩔 수 없는 '나'를 즉흥적인 '나'로 정의한다. 그에겐 체계적으로 훈련된 사고나 논리가 없다. 자기만의 논리와 이론으로 무장한 치다. 기다리는 '나'는 또 이런 즉흥적인 '나'와 인터뷰를 해야하는지 의문스러워 한다. 오랫동안 보아왔지만, 익숙하지 않은 '나'와의 이야기. 그들은 우울한 자승자박을 시작한다.

(질문자는 기다리는 '나', 답변자는 즉흥적인 '나'. 그러나 이 인터뷰는 묻는 자와 대답하는 자의 경계가 모호하다.)

Q: 오늘은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오늘 <디파이언스>라는 영화를 보고 온 것으로 안다. 최근 또 어떤 영화들을 보았는가. 3개월 이내에 본 영화들로 답변해달라.

A: 기억나는 대로 이야기하자면, <할람 포>, 히치콕의 <싸이코>, <올드 보이>, <위대한 유산>, <눈먼자들의 도시
>, <쌍화점>을 보았다. 앞의 네 영화는 개인적으로 구해서 보았고, 뒤의 세 편은 극장에서 보았다.

Q: 이 시간에 이야기 하고 싶은 주제가 <눈먼자들의 도시>와 <디파이언스>의 휴머니즘이라고 알고 있다. 나머지 영화는 휴머니즘적 요소가 없는가? 아니면 두 영화에서 공공연하게, 알기 쉽게 휴머니즘에 대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인가?

A: 물론 다른 영화에서도 휴머니즘적인 요소를 찾을 수 있다. <할람 포> 같은 경우에는 새어머니와 어머니의 그림자 사이에서 갈등하고 해결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올드 보이>에서는 딸을 사랑한 오대수가 삶을 선택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믿음을 지켜나가려고 하는 모습에서, <위대한 유산>에서는 삶의 이유가 작은 것일지라도 인간의 삶은 긍정할 수 있다는 메세지에서 그러한 요소들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들이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는 아니다. 게다가 내가 찾아낸 요소들에 헛점이 있다. 그러나 <눈먼자들의 도시>나 <디파이언스>는 아주 명확하게 휴머니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Q: 그렇다면 왜 이 두 영화를 따로 이야기하지 않는가? 왜 주목했는가?

A: 이 영화들은 아주 비슷한 배경과 상황을 가짐으로써 자연스러운 관계를 맺는다. <눈먼자들의 도시>에서는 모두가 눈이 멀어 빠지는 광기의 인간에 대해서, <디파이언스>에서는 나치즘과 전쟁, 그리고 유대인에 대한 학살 자행이라는 광기에 대해서 설명한다. 억압 받는 집단과 인간다움을 잃어버리는 정황, 그 속에서 숱한 회의와 괴로움을 겪는 인간의 모습, 이러한 배경 뿐만 아니라 스토리 라인에서도 굉장한 유사성을 보인다. 두 영화 모두 어떤 그룹에 대한 리더가 존재하고, 그 리더의 눈으로 영화가 진행된다. 뿐만 아니라 이 리더들은 모두 이성적으로 판단하려고 애쓰고 모두를 이끈다.

Q: 그렇지만 이들은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눈먼자들의 도시>에서는 여자가 리더이며, 여성적인 시각과 작은 커뮤니티에 문제 해결의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디파이언스>에서는 남성적인 판단과 시각, 그리고 해결방법이 등장한다. 총을 쏘고, 적에게 대항하고, 내 민족을 지키는. 비록 여성도 총을 쏘고, 자신을 지키려고 애쓰지만 영화 대사에서 볼 수 있듯이 "여성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총을 들지만, 남자는 여자를 보호한다."라고 하지 않는가. 조목조목 집어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아닌가?

A: 당신의 말에 동의한다. 그러나 굳이 내가 이 영화들을 연결지으려는 것은 좀 더 큰 틀에서 볼 때 '무엇이 인간다움인가?'라는 고뇌를 부르기 때문이다. 당신이 이야기하는 페미니즘이나 팜므 파탈, 옴므 파탈적 요소들에 대해서 나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광기의 상황 속에서 인간이 인간다움을 잃어버리는 것이 인상적이지 않는가? 두 영화 모두 극한 상황 속에서 인간이 겪게 되는 기아(식량 문제), 인구 감소(갑작스러운 죽음), 정착지를 잃어버림, 병(감염)과 배설물로 상징화 되는 위생, 나눔, 강제적인 성교, 혼례와 의식,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 신에 대한 기대와 좌절, 이것들을 설정하고 재현한다. 과연 이들을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가. 우리가 인간다움을 지키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물음들을 가지고 있기에 이 영화들은 같은 뿌리라고 할 수 있다.

Q: 그렇다면 과연 인간답다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전적으로 개인적인 생각에 결국 위의 조건은 '인간'을 이루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인 셈이다. 안정적인 생활과 도덕이나 법, 의식과 같은 규칙들이다. 하지만 이것들은 언제든지 깨어질 수 있는 것들이다. 이를테면 어떤 병일 수도 있고, 전쟁이나 집단 학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떻게든 그러한 요소들은 해결될 수 있다. 생존을 위해 먹을 것을 뒤지고, 약을 구하고, 집을 만들고, 규칙을 세우면 된다. 그러나 이런 요소들을 해결하더라도 영화 속에서 인간다움을 되찾았나? <눈먼자들의 도시>에서는 식량을 독점하고, 무기로 무장함으로써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B병동이 등장하지 않는가. 또 그들은 버젓이 여자를 요구하고 난교를 벌이지 않던가? <디파이언스>에서도 리더가 병에 걸렸을 때, 식량을 독점하고 여자를 원하는 무리가 있지 않던가? 이것은 요소에 지나지 않다. 아마도 인간다움이란 남을 위하는 것, 즉 '사랑'을 가지고 실천할 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행동에 대한 책임과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 <눈먼자들의 도시>에서 보이는 앞을 못 보는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뒷바라지 하는 여성의 모습에서, <디파이언스>의 자신의 식량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어려운 사람을 하나 둘씩 데려오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또 포로로 잡혀온 독일군이 곤혹을 처하자 난감해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지 않는가.

Q: 인간다움이 곧 '사랑'이라... 조금 애매한 개념 아닌가?

A: 좋다. 당신들의 구설수에 잘 오르는 권력power에 빗대어 생각해보자. <눈먼자의 도시>에서 권력자=리더는 '보다See'라는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전지전능한 힘이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을 위해 기꺼이 아비규환의 세상으로 몸을 던진다. 그리고 모두가 시력을 잃어버린 순간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앞장서고 희생한다. <디파이언스>의 리더=지휘관commander은 무리를 이끄는 수장이며, 규칙을 세우고, 집행하고, 의견을 수렴한다. 그는 독일군과 싸울 무기가 있고, 병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약자나 여자들을 지키기로 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존과 뗄 수 없는 식량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받아들이지 않나? 인간의 생존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고 할 수 있지 않는가. -혹자의 말로 '정치적인 옳바름'-
사실 최근에 본 <쌍화점>에 실망을 금하지 못했던 것은 확고한 메세지가 없기 때문이었다. 동성애 코드나 왕과 왕비 그리고 왕의 내연남이라는 삼각구도에 대한 어떠한 불만이나 환상은 없다. 영화에서 이러한 조건에 대한 정서적인 동질감이나 비극성을 느낄 수 없었다. 어쩌면 나의 눈이 영화 속의 미학적 감수성을 잡아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야기란 메세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느낌 뿐만 아니라, 메세지 말이다. 인류는 비슷한 이야기 뼈대(플롯)에서 반복적인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두 영화가 볼만 했다고 느껴지는 것은 뚜렷하고 '정치적인 올바름'이 담겨있는 메세지가 있기 때문이다.

Q: 당신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완벽하게 공감하긴 힘들다.

A: 아직 내 공부가 부족하다. 이해해달라.

Q: 마지막 질문이다. 혹시 지금 당장 보고 싶은 책이 있는지?

A: 얼마 전에 읽다가 내려놓은 <그리스인 조르바>를 보고 싶다. 다음 주 내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09/01/18 21:36 2009/01/18 21:36
1 2 3 
전체 (26)
영화 (9)
일상과 책 (13)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