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는 항상 무라카미의 『태엽감는 새』를, 소설속에서 나오는 편지들을 생각한다. 곱씹어본다. 그리고 책에서 등장하는 가사하라 메이의 메이의 편지를 떠올린다. 500번쯤 편지를 써서 보냈지만, 받지 못했다는 주인공의 말에 가사하라 메이는 하늘을 쳐다본다. 주소가 잘못된 수많은 편지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 주말에는 태엽을 감지 않는다는 대목이 기억났지만, 몇 페이지에서 누가 한 말인지 생각나지 않는다. 나도 주말만 되면, 태엽을 감지 않는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딱히 만날 일도 없다. 누군가 걱정하길, 그게 차라리 예술적인 수준으로 승화되지 못할거면 하지 말라고 했는데 말이지. 주말에는 고독과 외로움과 그리고 슬픔과 기쁨이 조금씩 섞인다.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딱히 하루키를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는데, 1Q84를 읽고 있기 때문인지… 그만큼 하루키에게 내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었나? 여하튼 이 이야기는 『1Q84』와 『공무도하』를 마저 읽고 나서 하도록 하고… 오늘은 『템페스트』와『밤으로의 긴여로』를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지난 6월 예술의 전당에서 손진책 씨가 연출하고 서이숙 씨가 출연한『템페스트』는 셰익스피어의 원작이다. 다행이 지루하지 않게 잘 편집되어서 보기가 좋았다. 이야기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러하다.
극중극으로 편집된 템페스트는 어느 보호시설에서 시작된다. 주로 갈곳 없는 노인의 건강을 돌보는 곳에서 후원을 얻기 위해 연극을 상영키로 한다. 젊었을 적 유명한 연출가였던 '정씨'가 주축이 되어 감독을 맡고 보호소의 사람들이 하나씩 배역을 맡아 연극을 하기로 한다. 그리고 무대의 시간은 연극 연습을 하면서 흐르게 된다. 그런데 주인공의 역할을 맡아야할 '최씨'가 돌연 보호소를 나가게 된다. 예전에 절연한 딸이 다시 연락해서 그와 함께 여행을 가겠다고한 것이다. 사람들은 배역 때문에 난감해하지만, 따뜻하게 그를 배웅한다. 그리고 연출을 맡은 '정씨'가 주인공인 '프로스페로'역을 맡기로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다시 열심히 연습을 한다. 연습은 원작의 흐름과 동일하게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연극을 보면서 또 하나의 연극을 보게 된다. 대신 도중에 몇 가지 재미있는 일들이 발생한다. NG를 낸다거나, 맡은 역에 불만을 갖는다거나… 이렇게 한장면의 연습이 끝나면 중간중간 보호소를 나간 '최씨'가 연락을 한다. 이곳은 남국의 어디이고, 풍경이 어때! 참 좋아. 정말 좋아. 보호소 사람들은 그의 행복을 부러워하면서 그를 격려한다. 드디어 절연한 딸과 화해를 했구나 하고 말이다. 극중극인 템페스트가 복수가 아닌 화해로 아름답게 마무리 되고, 모두의 기쁨 속에서 '최씨'가 엉망진창이 된 모습으로 등장한다. 사실 딸은 자기의 도장이 필요해서 자신을 만난 것이며, 곧바로 버려졌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처연한 그의 장례식으로 연극은 막을 내린다.
연극 자체는 율동과 음악으로 그리고 그들의 즐거운 연습으로 재미있고 감동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극중극 '템페스트'도 원수에 대한 복수가 아닌 갑작스러운 용서와 화해로 마무리 된다. 그래서 '최씨'의 죽음은 예상 가능한 장면으로 등장하지만 더욱 처연하고 여운이 남는다. 어째서 이야기처럼 모두를 용서하고 용서를 구하고 화해할 수 없었던 것일까. 보호소 사람들이 진짜 가족보다 더 가족 같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왜 '최씨'는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돌아오지 않았을까. 몸이 좋지 않고 갈곳도 없는 그는 왜 돌아오지 못했을까. 아마 딸을 용서한다고 했던가. 왜 가족은 보편적으로 서로를 가족은 사랑할 수 없는가. 인생에 대한 냉철하고 현실적인 시점이 느껴진다.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사실 별 볼일 없다. 별 볼일 없어도 잘 먹고 잘 살아간다. 헌데, 왜 사는 것은 이야기처럼 쉽지 않을까. 그리고 왜 연극은 삶의 슬픔을 더 심화시키는 것일까. 벌써 일큐팔사를 인용하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 세상이 현실세계라는 것을 누가 알지?'

추석 연휴에 본 『밤으로의 긴여로』는 유진 오닐의 원작이며, 임영웅씨가 연출하고 손숙, 김명수, 최광일, 김석훈, 서은경이 출연했다. 무려 3시간짜리 연극. 그것도 하녀 한 명 빼고, 무대도 바뀌지 않고 위의 배우 4명이 줄창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연극 초보인 나에게 쉽지 않았던 연극. 무려 살짝 정신을 놓은 적도 있다. 코를 골면서 주무신 분이 있다고 하면 더 웃길까? 여하튼 줄거리는 정말 간단하다.
아버지 '타이런'은 젊었을 적 상업적으로 성공한 배우였다. 그러나 연극 시즌 때만다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호텔을 전전하는 생활을 한다. 형 '제이미'는 서른이 넘었지만 줄기차게 방탕한 생활을 하고 직업조차 구하지 못해 집에 돌아온 탕아. 항상 부모님과 갈등을 겪는다. 동생 '에드먼드'는 형과 다른 방식으로 방탕하지만 몸이 건강하지 못해 집에 들어왔다. (방탕도 체력이 되야 하나보다.) 어머니 '메어리'는 잇다른 출산과 정착하지 못한 삶을 비관해 마약을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야기는 어머니가 다시 마약을 시작했다는 것을 삼부자가 확신하면서 시작된다.
이 가족사의 슬픔은 어머니로부터 시작된 서로에 대한 불신과 마찰이다. 가족 구성원 모두 서로 다른 것 가지고 있다. '아버지'는 적어도 '제이미'가 정극(셰익스피어)을 할 수 있는 배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으나 '제이미'는 그것을 부응해주지 못했다. '아버지'의 바램 뒷면에는 정통극에서 인정을 받았지만, 차츰 상업적인 성공을 하는 무난한 극을 선택하면서, 가장 인정 받았을 때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자신이 있다. 그리고 '제이미'는 일전의 방탕을 크게 후회하지만 수전노 아버지와의 화해를 거부한다. 현재 자신의 처지를 아버지의 탓으로 돌린다. 그리고 그의 행동 이면에는 '에드워드 (동생)에 대한 사랑이 있다. '에드워드'는 '메어리(어머니)' 때문에 크게 상처받아 집을 무작정 떠나 고생한다. 그리고 병과 무일푼을 가지고 집에 돌아와 새로운 삶을 꿈꾸는 인물이나 병이 깊어져 힘든 삶을 보낸다. 그리고 '메어리'는 이미 약에 빠져버린 자신을 원망하지만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자신을 미워한다. 약을 할 때마다 자신이 행복했던 나날로 돌아가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서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깊은 불신과 부끄러움으로 자신의 진짜 마음을 내보이지 못한다. 진짜 마음 그러니까 서로에 대한 사랑이 나타나는 것은 어머니가 이상한 행동을 할 때마다 나온다. 그리고 현재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모르는 불안감이 그들의 인생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아프고 아픈 그리고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 속에서 그들은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한다. 돈, 알콜, 책, 게임, 대화 이 모든 것들은 잠시의 도피이지만 진정한 해결해주지 못한다. 해결 할 수 없기 때문에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려고 한다.
사실 이 작품은 작가 스스로의 삶을 연극화 시킨 것이다. 퓰리쳐상을 네 번이나 받고,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불세출의 작가 유진 오닐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극중의 '에드먼드'의 삶이 그의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머니가 약을 했으며, 방탕한 시절을 보내고 종교도 잃는다. 선원이 되어 세상을 주유하지만 말라리아와 폐병을 얻는다. 그는 생에서 세번 결혼했으며, 찰리 채플린과 결혼한 딸과 의절한다. 그리고 먼저 장남을 잃고, 자신도 호텔에서 폐병으로 사망한다. 이 밤으로의 긴여로는 결혼 12주년을 기념하여 아내에게 바친 헌사이며, 자신의 지난 날을 돌이키는 회고록이다. 그는 적어도 25년간 자신의 작품이 연극으로 상영되지 않기를 바랬으며, 그 서문에 아내에게 바치는 헌사를 기록한다.
왜 하필 그토록 사랑한다는 아내에게 이렇게 우울한 연극을 남겼을까. 내가 생각하기에 그는 진정한 이해를, 사랑을 아내에게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진정 어려운 일이 있었고, 아직도 그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자신의 불우했던 시절을,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시절을 아내에게 보여줌으로써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연극 자체는 사실 힘들고 길어서 어려웠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 모습이 겹치면서, 아픔과 쓰라림을 느끼면서 봤다. 너무 건장하게 등장한 '에드먼드'와 손숙씨의 약간 졸린 말투를 '제이미'와 '아버지'가 풀어주면서 훌륭한 연극을 만들어냈다. 나는 기침이 심했으므로 연극 내내 기침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옆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그리고 조력자와 함께 보는 시간이었기에 내 기침이 더욱 원망스러웠다.
굳이 지나간 『템페스트』와『밤으로의 긴여로』를 함께 거론한 것은 두 이야기 모두 가족이란 무엇인가? 생이란 어떠한 모습을 취할 수 있는가를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두 연극에서 느껴지는 아픔은 비슷한 질감을 가지고 있다. 서로의 아픔을 이해해주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잘 해내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아픔이 절정이 달했을 때 느껴지는 상실감. 현실은 어느 정도 인식 가능한 것이고, 절대 나아지지 않는다는 느낌. 그것이 이 연극들의 비슷한 영역이다. (어쩌면 리얼리즘이라 붙일 수 있을까?) 이 연극들이 좋다는 뜻은 생각의 여지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진짜 그럴까? 정말 그러할까? 그리고 어쩌면...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아픔이 있기에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메세지. 그리고 그 아픔 속에서도 나는 결국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느낌을 준다. 고맙게도 말이지.
돌아오는 11월 8일, 학교 전공에서 선배들과 함께 보내는 모임이 있지만 나는 조력자와 함께 연극 한 편과 카르멘을 보러 간다. 보여준다는 데 마다 할 이유도 없을 뿐더러, 그 편이 나의 인생에 더 큰 에너지를 제공한다. 그리고 운이 나쁘면, 이 공연들이 올해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마지막 연극이 된다. 나는 천천히 주변을 정리하고 있다. 좋아했던 사람에게 뜬금 없이 고백해보기도 하고, 내 책을 집으로 빼고 있고, 누구가 책을 가지고 싶다고 하면 내것에서 주기도 한다. 입지 않는 옷을 집으로 보내고, 필요 없는 것들은 버리고 있다. 자살하려는 사람 같다고 해서 조금 쓸쓸하기도 하다. 그리고 정말 내가 이곳을 떠나야한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고마운 사람들을 찾아가서 고맙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아직 내게 남은 시간이 있다는 것이 행복하달지. 지난 연극들을 정리하면서, 또 빈껍데기만 썼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아직도 내 생각을 이야기 하기 위해 여러 곳에서 인용을 한다. 이것이 진짜 내 생각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느낌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다면,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이해를 얻어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아직도 한다. 과연 부질없는 것일지, 아니면 끝내 이룰 수 없는 것인지…
*전자의 연극은 친구와 후자의 연극은 조력자와 함께 보았다. 『갈매기』를 보면서 꿈꾸었던 내 바램이 이루어졌다. 고마운 세상.
*유진 오닐의 연극을 보면서 특별한 인연을 만들었다. 우연한 만남을 가졌다. 같이 수업을 들은 사람이 우연히 연극을 보고 있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 사람을 그 다음 주 김훈 강연회에서 만나 이야기를 건네봤다. 그는 원작을 보고 너무 재미가 있어서 스스로 찾아 처음으로 연극을 봤다고 했다. 나는 조력자의 말을 듣고 원작을 대충 들춰보고 왔는데 말이지. 그 다음날 우연히 만나서 오랫동안 이야기를 했다. 그는 하루키를 알고, 영미 문학과 러시아 문학을 알았다. "개츠비를 세 번이나 읽은 사람은 내 친구가 될 자격이 있지."라는 말을 서로 웃으면서 했다. 그와 좋은 친구로 지내고 싶다. 그리고 실제로도 좋은 지기가 될 것 같다.


룬룬
누군가와 같이 있으면 잡생각이 들기 마련입니다. 혼자서 시간을 보낼 때 성찰과 함께 사유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조금 쓰리더라도 인생에 있어서 나름 뜻깊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2009/12/06 23:51
WILLIAMSHelena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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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하
오랜만에 뵈용 ㅋ
..으로 끝내려고 헀는데 너무 분위기에 안맞는것 같아서 일단 좀 길게 늘여봅니다.
점점 글빨이 살아나시는 것 같네요. 나날이 발전하시는거 보니 부럽습니다.
Ps.근데 일부러 길게 늘이실 필요는 없지 싶어요. [...] 2010/08/03 2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