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숍에 앉아서 '나'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나'는 깔끔하게 머리 모양을 만들고, 말쑥한 정장 느낌의 옷을 입고 있다. 이 기다리는 '나'를 비판적이고 싶고, 논리적이고 싶은 '나'로 정의한다. 그래서 기다리는 '나'는 시간 약속을 중요시 한다. 그가 불만에 찬 표정으로 커피를 들이킬 때, 드디어 '내'가 당도한다. 사과도 하지 않고 불쑥 앉아서 물을 들이킨다. 사과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인지, 아니면 어색한 것인지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그래. 너가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안다. 이 어쩔 수 없는 '나'를 즉흥적인 '나'로 정의한다. 그에겐 체계적으로 훈련된 사고나 논리가 없다. 자기만의 논리와 이론으로 무장한 치다. 기다리는 '나'는 또 이런 즉흥적인 '나'와 인터뷰를 해야하는지 의문스러워 한다. 오랫동안 보아왔지만, 익숙하지 않은 '나'와의 이야기. 그들은 우울한 자승자박을 시작한다.
(질문자는 기다리는 '나', 답변자는 즉흥적인 '나'. 그러나 이 인터뷰는 묻는 자와 대답하는 자의 경계가 모호하다.)
Q: 오늘은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오늘 <디파이언스>라는 영화를 보고 온 것으로 안다. 최근 또 어떤 영화들을 보았는가. 3개월 이내에 본 영화들로 답변해달라.
A: 기억나는 대로 이야기하자면, <할람 포>, 히치콕의 <싸이코>, <올드 보이>, <위대한 유산>, <눈먼자들의 도시
>, <쌍화점>을 보았다. 앞의 네 영화는 개인적으로 구해서 보았고, 뒤의 세 편은 극장에서 보았다.
Q: 이 시간에 이야기 하고 싶은 주제가 <눈먼자들의 도시>와 <디파이언스>의 휴머니즘이라고 알고 있다. 나머지 영화는 휴머니즘적 요소가 없는가? 아니면 두 영화에서 공공연하게, 알기 쉽게 휴머니즘에 대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인가?
A: 물론 다른 영화에서도 휴머니즘적인 요소를 찾을 수 있다. <할람 포> 같은 경우에는 새어머니와 어머니의 그림자 사이에서 갈등하고 해결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올드 보이>에서는 딸을 사랑한 오대수가 삶을 선택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믿음을 지켜나가려고 하는 모습에서, <위대한 유산>에서는 삶의 이유가 작은 것일지라도 인간의 삶은 긍정할 수 있다는 메세지에서 그러한 요소들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들이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는 아니다. 게다가 내가 찾아낸 요소들에 헛점이 있다. 그러나 <눈먼자들의 도시>나 <디파이언스>는 아주 명확하게 휴머니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Q: 그렇다면 왜 이 두 영화를 따로 이야기하지 않는가? 왜 주목했는가?
A: 이 영화들은 아주 비슷한 배경과 상황을 가짐으로써 자연스러운 관계를 맺는다. <눈먼자들의 도시>에서는 모두가 눈이 멀어 빠지는 광기의 인간에 대해서, <디파이언스>에서는 나치즘과 전쟁, 그리고 유대인에 대한 학살 자행이라는 광기에 대해서 설명한다. 억압 받는 집단과 인간다움을 잃어버리는 정황, 그 속에서 숱한 회의와 괴로움을 겪는 인간의 모습, 이러한 배경 뿐만 아니라 스토리 라인에서도 굉장한 유사성을 보인다. 두 영화 모두 어떤 그룹에 대한 리더가 존재하고, 그 리더의 눈으로 영화가 진행된다. 뿐만 아니라 이 리더들은 모두 이성적으로 판단하려고 애쓰고 모두를 이끈다.
Q: 그렇지만 이들은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눈먼자들의 도시>에서는 여자가 리더이며, 여성적인 시각과 작은 커뮤니티에 문제 해결의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디파이언스>에서는 남성적인 판단과 시각, 그리고 해결방법이 등장한다. 총을 쏘고, 적에게 대항하고, 내 민족을 지키는. 비록 여성도 총을 쏘고, 자신을 지키려고 애쓰지만 영화 대사에서 볼 수 있듯이 "여성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총을 들지만, 남자는 여자를 보호한다."라고 하지 않는가. 조목조목 집어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아닌가?
A: 당신의 말에 동의한다. 그러나 굳이 내가 이 영화들을 연결지으려는 것은 좀 더 큰 틀에서 볼 때 '무엇이 인간다움인가?'라는 고뇌를 부르기 때문이다. 당신이 이야기하는 페미니즘이나 팜므 파탈, 옴므 파탈적 요소들에 대해서 나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광기의 상황 속에서 인간이 인간다움을 잃어버리는 것이 인상적이지 않는가? 두 영화 모두 극한 상황 속에서 인간이 겪게 되는 기아(식량 문제), 인구 감소(갑작스러운 죽음), 정착지를 잃어버림, 병(감염)과 배설물로 상징화 되는 위생, 나눔, 강제적인 성교, 혼례와 의식,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 신에 대한 기대와 좌절, 이것들을 설정하고 재현한다. 과연 이들을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가. 우리가 인간다움을 지키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물음들을 가지고 있기에 이 영화들은 같은 뿌리라고 할 수 있다.
Q: 그렇다면 과연 인간답다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전적으로 개인적인 생각에 결국 위의 조건은 '인간'을 이루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인 셈이다. 안정적인 생활과 도덕이나 법, 의식과 같은 규칙들이다. 하지만 이것들은 언제든지 깨어질 수 있는 것들이다. 이를테면 어떤 병일 수도 있고, 전쟁이나 집단 학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떻게든 그러한 요소들은 해결될 수 있다. 생존을 위해 먹을 것을 뒤지고, 약을 구하고, 집을 만들고, 규칙을 세우면 된다. 그러나 이런 요소들을 해결하더라도 영화 속에서 인간다움을 되찾았나? <눈먼자들의 도시>에서는 식량을 독점하고, 무기로 무장함으로써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B병동이 등장하지 않는가. 또 그들은 버젓이 여자를 요구하고 난교를 벌이지 않던가? <디파이언스>에서도 리더가 병에 걸렸을 때, 식량을 독점하고 여자를 원하는 무리가 있지 않던가? 이것은 요소에 지나지 않다. 아마도 인간다움이란 남을 위하는 것, 즉 '사랑'을 가지고 실천할 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행동에 대한 책임과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 <눈먼자들의 도시>에서 보이는 앞을 못 보는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뒷바라지 하는 여성의 모습에서, <디파이언스>의 자신의 식량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어려운 사람을 하나 둘씩 데려오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또 포로로 잡혀온 독일군이 곤혹을 처하자 난감해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지 않는가.
Q: 인간다움이 곧 '사랑'이라... 조금 애매한 개념 아닌가?
A: 좋다. 당신들의 구설수에 잘 오르는 권력power에 빗대어 생각해보자. <눈먼자의 도시>에서 권력자=리더는 '보다See'라는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전지전능한 힘이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을 위해 기꺼이 아비규환의 세상으로 몸을 던진다. 그리고 모두가 시력을 잃어버린 순간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앞장서고 희생한다. <디파이언스>의 리더=지휘관commander은 무리를 이끄는 수장이며, 규칙을 세우고, 집행하고, 의견을 수렴한다. 그는 독일군과 싸울 무기가 있고, 병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약자나 여자들을 지키기로 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존과 뗄 수 없는 식량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받아들이지 않나? 인간의 생존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고 할 수 있지 않는가. -혹자의 말로 '정치적인 옳바름'-
사실 최근에 본 <쌍화점>에 실망을 금하지 못했던 것은 확고한 메세지가 없기 때문이었다. 동성애 코드나 왕과 왕비 그리고 왕의 내연남이라는 삼각구도에 대한 어떠한 불만이나 환상은 없다. 영화에서 이러한 조건에 대한 정서적인 동질감이나 비극성을 느낄 수 없었다. 어쩌면 나의 눈이 영화 속의 미학적 감수성을 잡아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야기란 메세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느낌 뿐만 아니라, 메세지 말이다. 인류는 비슷한 이야기 뼈대(플롯)에서 반복적인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두 영화가 볼만 했다고 느껴지는 것은 뚜렷하고 '정치적인 올바름'이 담겨있는 메세지가 있기 때문이다.
Q: 당신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완벽하게 공감하긴 힘들다.
A: 아직 내 공부가 부족하다. 이해해달라.
Q: 마지막 질문이다. 혹시 지금 당장 보고 싶은 책이 있는지?
A: 얼마 전에 읽다가 내려놓은 <그리스인 조르바>를 보고 싶다. 다음 주 내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룬룬
'옳바름' -> 옳음 or 올바름 cause 옳다 or 올바르다 2009/01/24 20:01
elf
맞춤법 수정 감사합니다 [...] 2009/02/03 03:11